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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다

나는 날개야. 어디로든 날아갈 수 있지. 내 정신이 살아있는 한 너에게 여행을 선물할 수 있어. 나는 네 자유야.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지. 네 마음이 바라보는 곳, 그게 어디든 난 미리 가서 응원하고 있을 거야. 나는 운동화야. 언제든 달릴 준비가 되어 있지. 그러니 방향만 알려줘. 내가 지칠지언정 먼저 포기하는 일은 없을 테니.

너는 내 별이야. 어두운 밤, 빛을 밝혀주지. 삶은 때때로 무섭지만 네가 어디엔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잠들 수 있어. 너는 부드러운 밀크티야. 네 삶엔 보석이 가득해. 그 보석은 검은색이지만 빛이 충만하지. 네 삶은 화려하기보다 본래 있어야 할 자리에서 덤덤히, 맑게 빛나고 있어. 나는 매일 밤 별을 보면서 노래해. 나도 너처럼 어디엔가 있다는 걸, 그런 너를 보면서 빛나고 있었다는 걸 알아주길 바라. 우리가 서로에게 날개가 되기를 희망해.

그건 아마

글씨 때문인 것 같다. 휘갈겨 쓴 이름이 유난히 멋져 보인 것은. 오랜만에 쥐는 펜 느낌이 어색하다. 언젠가 한가락 했던 것도 같은데, 원고를 보낸 지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클립이 아직 남았을까. 서랍을 열고 손을 휘저어 본다. 박카스 뚜껑은 언제 이렇게도 모았나 모르겠다. 담당자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항상 삼십 분 내로는 답이 왔던 것 같은데. 뭐, 상황이 변했을 수도 있지. 어디선가 혜주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거기에만 넣으란 법 있니? 답답하기는. 너 내년에도 이러고 있겠다.’ 오랜만에 쓴 이름이 웃고 있다. 일 년이 지났으니 그래, 네 말이 맞긴 맞았네. 잠시 기억을 지었다.

낮에 뜨는 달

“이거 꼭 그거 같아요. 주사 맞으면 문지르라고 솜 주는 거, 아니면 화장 솜? 두부인가 싶기도 한데 설마 그건 아니겠고.”
“마시멜로 같은데요.”

“달 참 예쁘다.”
“그렇죠? 낮에 뜨는 달 너무 좋아요. 이 시기부터 여름이 좋은 유일한 이유랍니다.”
“저 여름 진짜 좋아해요.”
“정말요? 이유를 여쭤도 되나요?”
“모든 게 살아있는 것 같아서요.”

“사실 아직 편하시죠? 외로움보다는.”
“저는 사람을 좋아해요.”

“저 궁금한 부분이 있어요. 날씨에 감정 변화가 없기로는 지금껏 만난 사람 중 최고였는데, 이것은 나를 대할 때도 비슷했다. 처음 보는 지인마다 ‘미진 씨 좋아하는 거 맞죠?’라고 물을 정도로 그의 표정은 유독 변화가 없었다. 여기에서요, 미진이랑 사귀고 있는데 다른 남자한테 ‘너 얘 좋아하지?’라고 물었다는 걸까요?”
“미진이 이 남자를 데리고 지인을 만났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미진을 보고 ‘저 남자 너 좋아하는 거 맞지?’라고 했던 거였어요.”
“아하, 그런 거군요. 위태로운 남자인걸. 그럼 날씨와 감정 변화는요?”
“허술한 서사를 찾아내셨어요. 웬만해선 표정 변화도 없다는 얘기를 하려다가 뭐는 아침에 쓰고 뭐는 오후에 쓰고, 그렇게 짜깁기를 하던 중 나온 폐해입니다.”
“글 쓰면서 생각 많이 하시는구나 싶어 신기해요. 각각 다른 데서 영감받으시는 거예요?”
“대개는 되어보고 싶은 사람 되어보기, 하는 것 같아요. 남자 입장, 여자 입장 되어보기, 혹은 만나보고 싶었던 사람 그려보기 같은.”
“오, 통화 괜찮으세요?”
“좋아요. 5분만 이따가요.”

라면과 전봇대

“야, 닦아. 닦아.”
“오랜만에 하려니까 이게,”
“내 그럴 줄 알았지.”
“그래도 괜찮지? 맛은, 어때?”
“뭐, 봐줄 만해.”
“별로구나.”
“라면이 라면이지. 맛있다, 그래.”
“휴지도 없는데.”
“그러게 내가 한다니까.”
“나 적자란 말이야.”
“이번 달? 너 또,”
“그래도 예쁘지 않냐? 이거.”
“뭐, 전봇대야?”
“분위기하고는. 무드등이시란다.”
“무드-뭐? 참, 나 영지 봤다.”
“영지? 그 영지?”
“응. 왜, 그때 광화문에서,”
“잘 지내나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