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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

벨을 누른다. 응답이 없다. 멀리서 물소리가 들린다. 문에 귀를 댄다. 옆집 대문이 열린다. 남자가 슬리퍼를 끌면서 나온다. 여자가 뒤따른다. 좀 전까지 다툰 모양새다. 벨을 누른다. 조용하다. 문에 귀를 댄다. 첼로 소리가 들린다. 미진아? 문을 두드린다. 전해줄 게 있어. 남자가 눈을 굴린다. 집을 빙 돌아 창문을 찾는다. 커튼 사이로 불이 새나온다. 창을 두드린다. 첼로 소리가 멈춘다. 남자가 슬리퍼를 끌면서 집으로 돌아간다. 미진아? 다시 물소리가 들린다. 입구로 돌아가 벨을 누른다. 잠깐이면 돼. 옆집 대문이 열린다. 여자가 웃는다. 여기 안 살아요. 안에 있는 것 같은데요? 빈 집이에요. 문고리를 돌린다. 잠겨 있다. 물소리가 멈춘다. 미진아? 남자가 다시 나온다. 맨발이다. 누구라고요? 여자가 뒤따라 나온다. 오래 알던 친군데, 문을 두드린다. 남자가 이빨을 보이며 웃는다.

취미

입고 싶은 옷이 많았던 때가 있다. 언젠가 옷을 자주 사면서는, 기분 따라 고를 수 있게 미리 준비한단 생각도 했다. 가끔 옷장을 정리하다가 마지막 입은 게 언제인지 생각나지 않는 옷을 본다. 그냥 두자니 이번에도 입지 않을 게 뻔하고 버리자니 추억이 아깝다. 채우는 건 금방인데 비우기는 어렵다.

지하철을 타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창밖이 까맣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고 자리에 앉으면 여러 사람을 마주 본다는 게 두 번째였는데 요즘은 곧잘 탄다. 쉬는 날마다 종로를 가기 위해 서울역에서 지하철을 타는데, 자리에 앉는 대신 선 채로 창에 비친 사람들을 보는 게 재미있다.

규칙적인 여가를 보낸 지 반년쯤 됐다.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음료를 마신다. 책을 보는 시간도, 걷고 이동하는 시간도 거의 같다. 매번 비슷한 음악을 들으니 조급함도 쉬이 물러난다. 취미는 쉽게 오고 쉽게 사라진다. 사람도 그렇다. 미움 많은 세상, 미워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다시 태어나면 – 2

“성공을 해도 만족이 없어 보인달까, 고달파 보여요. 뭘 해도 핀잔 듣기 쉽고. 같은 능력이면 여자가 우대받는 것도 같아요. 화장도 남자가 하면 뭐라 하고, 머리 기르는 거나 치마 입는 것도요. 여자는 집 있다 하면 와, 열심히 살았네, 능력 있네, 하는데 남자는 집 있다고 하면 그 나이에 그 정도는 있어야지, 하잖아요. 같은 고통도 더 안고 사는 것 같아요. 나쁜 짓을 해도 근심을 떨치고 해소하면 좋은데 그런 걸 좀 못 하는 것도 같고요. 성공을 해도 와, 나 성공했어, 하는 느낌이 아니라 이 자리를 계속 지켜야 하는데, 싶어 희번덕거리는 듯해요. 나이 들수록 인상 좋은 아저씨를 보기도 힘들고요. 아줌마는 많은데.”
“남자들은 속 마음도 말을 잘 못 하고 혼자 안고 가는 것 같아요. 늘 경쟁하고 계급도 쉽게 나뉘고요. 여자들은 서로 보듬는데.”
“단순히 또 예를 들면, 남자보다 여자가 연애하기도 쉽고요.”

“여자는 살면서 고백을 많이 받긴 해요.”
“그건 그래요.”
“신랑은 다음 생에도 남자로 살고 싶대요. 궁금해서 물어본 적 있거든요.”
“정말요?”
“여자는 약해서 싫대요.”
“우리 신랑은 섹시한 여자로 태어나서 다 꼬시겠다던데.”
“저 그 대답, 들어본 적 있어요. 일 다닐 때, 여섯 살 많은 남자 직원이었는데 다음 생에 예쁜 여자로 살아보고 싶다고 했어요.”
“좋은 분이었어요?”
“잘 생긴 분이었는데, 예쁜 여자들은 남자들이 밥도 사주고 선물도 사주고 한다고. 본인은 사주는 입장이니까 다음 생엔 받는 입장으로 살고 싶대요.”

다시 태어나면 – 1

“저는 다시 태어나도 여자이고 싶어요.”
“정말요? 왜요?”
“여자로 사는 게 좋아요.”
“난 남자로 태어나고 싶은데. 한번 크게 성공해보고 싶어요.”

“저도, 다시 태어나도 여자. 근데 유럽 언니로 태어나고 싶어요. 막, 결혼 백 번 해도 괜찮고 연애만 하다 싱글맘이 돼도 괜찮고.”
“그래도 할리우드 스타는 싫어요. 너무 주목받잖아요. 나쁜 짓도 좀 하면서 살고 싶거든요.”
“그치, 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