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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

어디 살아요? 여기는 송파동입니다. 가깝네요. 저는 문정동인데 곧 이사 가요. 아, 어디로요? 광주요. 경기도. 아시나요? 제 외갓집이 광주에 있어요. 아하. 사진은 본인이에요? 왜요? 아, 이상형입니다. 반가워요. 원래 빈말을 잘 해요? 저는 진심인데 사람들이 잘 안 믿네요. 그럴 것 같아요. 목소리 좋은 사람은 일단 의심부터 하라잖아요. 누가 그래요? 어릴 때 고모에게 들었어요. 가벼운 사람은 아니죠? 저는 모릅니다. 판단해주세요. 오늘 저녁 약속 없으면 만날래요? 곰장어 좋아해요? 먹자고 하시는 건 아니죠? 첫 만남에. 뭐, 어때요. 전 그런 게 좋아요. 가림막 없는 인사. 송파로 오실래요? 잠실에서 봐요. 좋습니다. 몇 시 퇴근해요?

신기루를 만났다. 높이 뜨는가 싶더니 곧 사라진다. 항상 새롭고 또 익숙하다. 반갑습니다. 어디 살아요? 상도동이요. 아, 숭실대 근처죠? 아뇨. 제 집은 산과 가까워요.

아침

잠이 안 올 때 먹어라. 하나에 열두 시간이다. 중간에 깨면 일어나기도 전에 괴로울 수 있다. 반으로 쪼개면 시간은 삼분의 이로 줄어든다. 어떻게 채우든 부족하든 사실 상관없다. 나약함을 경험하기엔 좋을 것이다. 일과를 제대로 시작하고 싶다면 다른 사람의 충고 같은 건 무시하라. 전철이 느린 것처럼 보여도 네 걸음보다 빠르고 택시가 아무리 춤을 춰도 네 아침보다 느리다. 뜻대로 되는 일 하나 없어도 시간은 네 편이다. 느리게 살아라. 반 알을 먹더라도 마음은 숭고하여라. 길게 생각하고 짧게 살아라. 어차피 삶의 속도는 네 것이 아니다. 느긋하게 실패하라. 마음에 들 때까지 실패하면 마침내 잠들 수 있다.

쉬운 일

이름을 잊었다. 나이도 잊고 사는 곳도 잊었다. 만난 적이 없으니 얼굴을 잊을 일은 없다. 미안하다.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밤늦게 잠드는 일이 사라지니 내일이 기대되지도 않는다. 눈이 온다고 창을 열 일도, 비가 들이친다고 문을 닫을 일도 없다.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기억은 짧고 시간은 혹독하다.

유쾌한 하루다. 웃는 사람은 슬픈 생각이 많다. 쉽게 고마워하는 사람은 미워하기도 쉽다. 아침이 온다고 저녁이 사라진 게 아니다. 곁에 있어주지 못해 미안하다.

일상

별 것도 아닌 일에 기분이 쉽게 좋아지고 가라앉는다. 어제까지 좋던 사람이 갑자기 싫어지고 방금 전까지 별로던 사람이 괜찮아 보인다. 기대가 크면 실망하는 법인데 포기하면 좋아진다. 때때로 외로운 듯 서글픈 기분이 들고 또 금세 사라진다. 춥다가 더운 건 일상이고 나는 이 경험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별 게 아닌데 별 것처럼 시간이 흐른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커피를 마신 지 반년이 지나가는데 매일 느끼는 맛은 다르다. 음악이 바뀔 때마다 기분이 변하는데 종종 다음 기분을 알고 있어서 음악을 건너뛰기도 한다. 사소하다면 사소한 것이고 거창하다면 한없이 거창한 일이 매일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