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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형을 나누면

둘 이상이 모이면 대칭 또는 비대칭, 뭐가 되든 되고 만다고 그는 설을 쏟는다. 서로 다르면 다른 대로, 비슷하면 그중 같은 걸 찾아가며 사람들은 소통한다는 것인데 이어지지 않는 말을 그럴싸하게 껴 맞추는 것도 숨은 장기라면 장기다. 숨었다고 하기엔 그의 언어가 유별나니 키가 조금 작다고 해두자. 누군가는 허리를 굽히고 봐야 발견하는 매력이라고, 잘 보이지는 않지만 한번 보면 계속 생각난다는 의미로 말이다. 그에게도 신은 있어서 한 줌 흙 같은 문장을 손에 쥐었다가 풀면 석영이 되기도, 흑연석이 되기도 하니 세상은 은근한 구석을 가진 셈이다.

누군가 내게 노력을 묻는다면 나는 삼각형을 말하겠다. 나누고 나누어도 웬만하면 다시 삼각형을 이루니 될 대로 되라지, 해도 삶은 살아지니까 말이다. 대충 보아도 불공평한 것보다야 좋지 않냐고, 그의 말은 언젠가부터 내 언어에도 녹아들어 있다. 둘 이상의 반대말인 하나, 혼자, 홀로 사는 삶은 종종 외로우면서도 흥미롭고, 조용하지만 복잡하다. 아무도 없음이라는 말도 둘 이상의 반대에 속한다면 홀로 사는 하루 중 나 자신이 없는 시간도 있다는 말일까, 있음이 하나일 때 없을 수도 있다면 내 존재는 자신을 부정할 수도 있다는 말이겠지, 그래서 둘 이상이 모이면 대칭, 혹은 비대칭이 되는 거라고 그는 오늘도 같은 이야기를 두 번, 세 번 펼쳐둔다.

집에 갈 시간이 지났는데 일어날 기미가 없는 너는 이 밤을 함께 보낼 생각이냐고, 나는 묻지 않았다. 대신 빈 잔을 채우면서 모래알 같은 안주를 긁어다가 그의 머리맡에 둔다. 그리고 창밖을 본다. 풀냄새가 비릿한 향을 덮기 시작하니 과연 여름도 코앞이구나. 달이 맑고 크다. 가로등에서 번진 불빛이 무수한 삼각형을 만들고 나는 빛을 나눈다. 될 대로 되라지, 해도 결국 삶은 살아지는 거라고, 애써 살지 말고 사는 대로 살자고 그는 중얼거린다. 달이 삼각형으로 빛난다.

두 번째 기회

찬장을 연다. 오늘은 무얼 먹을까 고민한다. 라면, 수프, 5초, 10초, 만두, 볶음밥, 20초, 라면을 집어 든다. 어제 먹은 것과 브랜드만 다르면 됐지. 참치캔도 집을까 하다가 그냥 둔다. 생각만으로 배가 불러오는 기분이다. 찬장 문을 닫는데 먼지가 소복이 내린다. 냄비에 물을 담는다. 가스 밸브를 열고 불을 지핀다. 냉장고를 열고 계란을, 계란이 없다. 아니, 구석에 하나가 남았구나. 치즈도 꺼내어 둔다. 어디 보자, 김치도 아직 남아 있고 물도 넉넉하고, 콜라를 머그잔 가득 따라다가 테이블에 앉았다. 물이 끓기를 기다린다.

티브이를 켠다. 채널을 돌리면서 시간을 가늠한다. 뉴스를 하기엔 이른 시간이구나. 영화 채널을 찾아간다, 가던 중 맛집 탐방 프로그램을 본다. 맛있겠다. 저런 음식은 언제 먹어볼 수 있을까.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우선 밥을 먹고 생각하자. 물이 끓나 보다. 냄비 뚜껑을 열고 라면을 넣는다. 면은 미리 쪼개어 두지 않으면 깜박 잊는다. 그리고 먹으면서 후회를 한다. 면이 길면, 당겨도 당겨도 면발이 끝나지 않으면 기분이 상한다. 먹는 것만큼은 내 마음대로 되어야지. 계란은 마지막에 넣고 흰자만 저어준다. 반숙 노른자가 흘러나온 국물, 그것은 제일가는 맛입니다. 그렇고 말고요.

밤새 슬픈 꿈을 꾸는 상상을 했다. 그럴 수 있다면, 할 수 있다면 기억을 모두 지워보고 싶다. 그리고 모든 걸 다시 해보고 싶다. 세상 제일가는 맛을 넘기면서 기억도 한 모금, 오늘 일과를 넘겨 둔다. 행복한 꿈이었다. 현실은 상상보다 말랑한 법이니까. 나는 종종 다른 사람의 꿈을 훔치는 상상을 한다. 그 사람이 나이길 바라며 꿈을 짓는다. 배가 금세 불러오지 않는 걸 보니 오늘은 좋은 날이구나. 잘 살아 있구나. 과자는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가 찬장을 다시 본다. 맛있는 꿈을 꾼다.

춤추는 손잡이

이번 정류장은 갈월동입니다. 버스에 남자 둘이 탄다. 한 명은 나이가 지긋해 보이고 다른 한 명은 고등학생쯤 된 것 같다. 둘은 서로를 모르는 체한다. 빈자리가 많은 덕분에 한 명은 금세 자리에 앉았지만 다른 한 명은 우물쭈물한다. 빈자리가 많은 탓에, 어디에 앉을지 고민하는 사이 버스가 출발하고, 이어서 차선을 바꾸는 바람에 천장에 달린 손잡이들이 춤을 춘다.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휘청거리다가 손잡이를 겨우 잡는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와서는 내 옆에 앉는다. ‘빈자리도 많은데 왜 여기 앉아요?’라고 나는 속으로 물었다. 창밖으로 소나무가 빠르게 지나간다.

이번 정류장은 서울역입니다. 이번엔 여자 둘이 버스에 탄다. 2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데 서로 친구이거나 꽤 가까운 사이 같다. 한 명은 머리가 어깨를 덮었고 다른 한 명은 머리를 질끈 묶어 목덜미를 내놓았다. 둘 다 20대 중반쯤 되었나 싶다. 내 옆에 앉은 남자가 두 여자를 관찰한다. 버스가 출발하면서 천장의 손잡이들도 다시 춤을 춘다. 이번에는 차선을 바꾸지 않았지만, 기사가 악셀을 세게 밟은 탓인지 버스가 앞뒤로 출렁인다. 서울역을 지나 남대문으로 곱게 진입하는 것을 보니 오늘은 시위가 없거나 이미 지나간 모양이다.

이번 정류장은 남대문 시장입니다. 버스가 멈추지 않고 역을 지나쳐 간다. 내리는 사람도, 타는 사람도 없다. 거리가 한산하다. 빨강, 노랑, 초록, 파랑, 손잡이는 색색 옷을 입고 창밖을 본다. 버스가 차선을 바꾸면서 내 몸도, 내 옆에 앉은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자의 몸도 좌우로 흔들린다. 서울역에서 합류한 두 여자가 서로 마주 보고 웃는다. ‘즐거운 일 있어요? 버스도 나눠 타는데, 좀 같이 웃으시죠.’라고 말하는 상상을 했다. 버스가 급히 속도를 줄인다. 천장에 달린 손잡이가 삐걱대면서 웃는다. 창밖으로 소나무가 보인다. 아까부터 멈추어 서서 손을 흔들고 있다. 이번 정류장은 명동, 영플라자 앞입니다. 우리 모두 내릴 시간이에요. 일어서다가 손잡이에 머리가 닿았다.

렌즈와 고양이

A.
첫 번째 차는 빨간색이래. 멋모를 때 아니면 언제 타보겠어? 안 그래도 동글한데 사과 같겠다. 뭐, 어때. 귀엽잖아. 하긴, 나 컴퓨터 본체도 빨강이다. 너 학교 다닐 때도 그랬어. 모니터 빨간 거 산다고 동네방네 뒤지고.

B.
고양이가 달력을 본다. 고양이가 몸을 돌리다가 달력을 넘어뜨린다. 렌즈가 고양이를 본다. 달력은 누워서 하늘을 본다. 렌즈가 달력과 고양이를 두고 고민한다. 고양이가 달력을 본다. 고양이가 발을 떼자 달력이 나지막이 일어난다. 렌즈가 달력을 본다.

C.
“크림을 냉동고에 넣으면 얼겠지? 그럼 아이스크림이 되는 거야. 그런데 그 크림이 얼면서 노랗게 변했어. 그럼 바나나 맛인가 싶겠지? 이제 그 크림을 부숴서 텀블러에 담아봐. 사람들은 이걸 뭐라고 부를까?”
“바나나 샤베트요.”
“응, 됐다. 합격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