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1994

작가

매일 다른 꿈을 꾸던 때가 있었어요. 그래서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는 아직 모릅니다. 먼지 때문인가 요 며칠 오락가락해요. 일이 잘 되다가 말았다가, 상쾌했다가 침울했다가 합니다. 독립한지는 칠 년쯤 됐어요. 익숙하면서 익숙해지기 싫은 기분을 매일 느낍니다. 어서 봄이 오고 나무에 살도 붙고 하면 좋겠어요.

주말엔 보통 뭐하고 지내요? 저는 지도만 보고 궁금한 곳 찾아가 보길 좋아합니다. 복권 긁는 기분이거든요. 가끔 도로가 끊겨서 흙길이 나오기도 하고, 시골 주민과 상담을 하기도 하고요. 도심길 얌전히 다니라고 만든 차가 주인을 잘못 만나 고생입니다. 어디 가지 않고 서울에 있을 땐 이곳저곳 걷거나 사람 없는 곳에서 소설을 봐요. 저는 경험주의자긴 하지만 그 경험이 좀 속되기도 하고 고급진 편은 아닙니다.

막연한 꿈

칼 오베, 표지에 이런 글이 있네요. 우리의 사랑은 야만적이고 낯설어 두렵기까지 했다. 흥미롭고 궁금한데 분량도 엄청나 보여요. 서점 가면 구경해볼게요. 이성은, 감성적 이성적 할 때의 이성인데 성별의 이성으로도 읽힐 수 있겠어요. 뭐가 내 매력인지 몰라 적어둔 말입니다. 음악은 매번 듣는 게 다른데 ‘느낌’이 오는 건 다 좋아요. 최근엔 호로비츠의 피아노에 열광했고 어제 잠들면서는 어떤 여자 성악가의 노래를 틀었어요. 사실 비율상 많이 들어온 건 락, 메탈, 펑크 같은 종류입니다. 몸은 괜찮아요? 저는 작년 말 독한 몸살로 고생을 했는데 손에 꼽을 만큼 아팠던 것 같아요. 덕분에 한동안은 건강할 겁니다.

발레, 뮤지컬, 좋아해요. 관람한 건 몇 없지만 동경합니다. 오케스트라 협주, 악기 연주회, 오페라 같은 것도 궁금한데 아직 본 적은 없어요. 좋은 공연이 있다면 추천해주세요. 싸이, 자우림 등 일반 콘서트는 한 연말에 이것저것 몰아서 본 적이 있는데 ‘싸이’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예술에 대한 로망, 나와 예술은 애증의 관계라고 상상합니다. 예술을 ‘하고’는 싶은데 그만큼 예쁘게 미치진 않았거든요. 허영이 많기도 하고요. 좋은 음악, 좋은 작품을 보면 작가의 삶을 통째로 갖고 싶단 생각을 합니다. 아이돌을 좇는 팬의 마음, 그런 거겠지요. 그래서 먼 꿈이 화가예요. 클로드 모네처럼 풍경 앞에 캔버스를 두고 그림 그리기. 예순 넘어 노인이 되면 그렇게 직업을 바꾸고 싶단 생각을 합니다. 아직 그림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거든요. 일하는 분야가 미술과 관련이 없기도 하고요. 십 년 뒤 이루고 싶은 건, 사실 가까운 꿈인데, 혼자 어플 같은 걸 만들면서 작은 짐가방만 들고 세계여행 다니는 거예요. 남태평양 어딘가 누워서 다음 구상도 하고, 사무실이 필요 없는 일이니까요. 꿈 얘기는 친해지고 싶은 상대에게 제가 묻는 질문인데 먼저 받기는 처음입니다.

손마니

작년에 누가 별명을 지어줬는데 ‘손마니’라 했어요. 손 많이 가는 사람이라고. 사람 만나고 이야기 듣는 것 좋아해요. 특히 새로운 사람에게서 내가 몰랐던 이야기 듣는 게 좋은데, 아니 좋아했었는데 점점 옛일이 되어갑니다. 지금은 개인적으로 누굴 만나는 일이 없어서 그 ‘어렵다’는 말 조금 알 듯해요. 별 이유는 없는데 그냥 의미 없다는 생각을 했나 봐요. 무심하단 소리도 자주 듣는데 사실 욕심나는 상대에겐 집착 비슷한 걸 느끼기도 해요.

여행 좋아해요. 우리나라 구석구석 다니는 게 재미있어요. 해외는 좋다고 할 만큼 돈이 없고 국내는 자동차 한 대면 어디든 가니까요. 저는 생각하시는 만큼 해박하지 않아요. 관심사가 아니면 보고 들어도 기억을 못하거든요. 술을 안 마신지는 오래됐어요. 사람을 안 만나기도 했으니. 외모는 대강 서점에 돌아다니는 사람들과 비슷해요. 안경과 한 몸이라 바보 같을 수도 있고요.

음식은 개나 뱀처럼 제 기준에서 특이한 것들 빼고는 다 좋아요. 회도 좋고 고기는 물론이고 찌개, 구이, 한식, 양식, 알 수 없는 나라 음식, 처음 먹어보는 것들, 향신료 잔뜩 들어간 특이한 요리라든가 아직 존재도 모르지만 언젠가 먹어볼 파푸아 뉴기니 원주민의 음식 등. 제 입맛은 참으로 저렴해서 맛집과 ‘구린’ 집의 차이를 몰라요. 밖에서 먹어야 할 일이 생기면 앞에 보이는 음식점 중 끌리는 곳으로 들어가 메뉴판 사진이 가장 잘 나온 음식을 고릅니다. 이자까야, 스파게티, 피자, 중국식 코스요리, 순댓국, 갈치조림, 그냥 먹는 건 다 좋아요. 요즘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

상투적인

집에 있는 게 고통이고 하루의 절반을 밖에서 보내야 기운이 충전되고, 그게 운명인가 했는데 얼마 전부터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새로운 것만 옳고 멋지고, 익숙함을 경계해야 한다 생각했는데 금년 들어서는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걸 자주 찾아요. 내키진 않지만 몸이 원하는 것 같아 따라가 보고 있습니다.

눈을 뜨니 일요일 낮인데 해가 쨍하지도 않고, 몸을 일으킬 이유도 생각나지 않아요. 작년이라면 대화를 시작함에 있어 서울 자주 오시나요, 언제 어디서 봅시다, 주량은 얼마나, 맥주 아님 소주, 집과 바깥, 익숙함과 새로움, 기억과 버림을 논해봅시다, 그냥 동네나 한 바퀴 걸읍시다, 그런 상투적인 얘기를 상투적이지 않게 했을까 싶은데 지금은 아무 생각이 없어요. 저는 요즘 하루의 반나절을 밖에서 보내는 대신 집에서 공부를 하고, 해가 지면 한두 시간쯤 아무 곳으로나 운전을 하다가 돌아오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