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보는 건물은 멋있고 좋은데 막상 안에 들어가면 별 느낌이 없습니다. 내가 이렇게 멋진 건물에 있다는 걸 인지하고 싶어도 아까 본 외관을 상상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나는 건물 안에 있으면서도 내가 몇 층, 어느 자리에 무슨 표정으로 앉아 있는지, 내가 있는 곳을 바깥에서 보면 어떤 모습인지 구경하고 싶은데 세상 규칙은 그런 행동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내 바람이 지나친 걸까요. 가끔 이렇게 하면 좋겠다 싶은 일이 생기면 기분이 좋습니다. 하고 싶은 게 생긴 것과도 비슷한데, 부서진 꿈 폐기장에서 재활용 물품 하나를 찾은 기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막상 실행에 옮기면 흥미가 떨어집니다. 대신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벌어지면 재미있습니다. 세상은 왜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만 흘러갈까요. 나는 어제의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가끔 간직하고 싶은 순간이 있어서 이건 절대 잊지 말아야지, 해도 금세 잊고 마는 게 이 머리의 특징입니다. 오히려 쉽게 지나가는 것들이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세상은 늘 나와 상관없이 돌아갔는데 나는 뭘 그렇게 기대하며 살았을까요. 사람들에게서 들을 땐 재미있는 이야기도 내가 하면 재미가 없습니다. 나도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고 싶은데 그건 나와 어울리지 않는 일인가 봅니다. 그리고 가끔 집에 도착한 택배를 보면서는 이걸 뜯을까 말까, 지금 열어볼까 내일 열어볼까, 며칠 더 놔둬 볼까 고민합니다. 포장된 물건을 보면 뜯고 싶지만, 막상 뜯긴 포장을 보면 마음이 아프기 때문입니다. 나는 종종 궁금합니다. 왜 건물 안에서는 바깥 생김새를 볼 수 없으며 왜 하고 싶었던 일을 시작하면 흥미를 잃게 되는지, 왜 기억하고 싶은 순간은 금세 잊으면서도 몸서리치게 싫은 순간은 머리에 각인되고 마는지, 왜 사람들이 재미있게 한 이야기도 내가 하면 재미가 없는지, 왜 나는 나와 상관없이 돌아가는 세상에서 아직도 뭔가를 기대하는지. 왜 다 알면서 모른 척 속고만 사는지. 나는 왜 여기에 남아있으며, 여기에서 난 무얼 하는 것인지. 그런데 사람들은 아무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내게 묻는 사람도 없거니와 내 물음에 대답해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나는 알고 싶은 게 많은데 다들 이미 아는 내용이라 흥미가 없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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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돈, 차
1.
“지난 주말에 운전하다가 연신내, 구파발을 지나갔는데 동네 몰라보게 좋아졌더라. 성모병원도 있던데.”
“그래도 난 갈 때마다 별로야. 왠지 모르게 늘.”
“그래. 역시 사람은 비가 새더라도 강남에 있어야 해.”
“뭐 나도 그런 생각이긴 하다만.”
“우리 동네도 몇 년 사니까 지겨워져서 옮기고 싶은데, 갈 곳이 없어. 집값도 부담스럽고.”
“요즘 특히 그렇지.”
“정말 생각할 구멍도 없다. 아니면 살다 보니 내 눈이 높아졌거나.”
“나는 지금 집 자체가 너무 낡아서 어딜 가도 만족할 것 같다만.”
“그렇겠지. 대만족하겠지.”
2.
“언젠가 차 바꾸게 되면 나도 자동차 동호회나 한번 들어봐야겠어.”
“차는 그냥 마음먹으면 사는 거 아니냐.”
“모르겠어. 돈 쓸 곳도 마땅히 없고 해서 그냥 모아두기는 하는데, 가끔 생각하면 왜 모으는지도 모르고 사는 것 같아.”
“막 쓰는 것보다야 낫겠지. 모으는 이유야 만들면 되지만, 한번 쓰고 나면 다시 모으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어딘가 뒤처진다는 느낌도 드니까.”
“그런 생각도 있는가 보다. 쓰고 난 뒤의 모습이 두려워서.”
“그래, 뭐. 앞날 걱정도 하고 대비도 해야 진화된 인간 아니겠니.”
“하지만 싸면서 멋지고 좋은 차라면 얘기는 다르지 않을까. 그런 차는 없겠지만.”
“싸고 멋지고 좋은 차. 있긴 있는데 사망 직전이더라.”
3.
“최근에 제일 갖고 싶었던 차는 머스탱인데.”
“머스탱, 미국 차. 테슬라, 미국 차.”
“하지만 연비가 너무,”
“미국 차가 좀 그렇더라.”
“무식하고.”
“테슬라조차.”
“하지만 미국 차의 키워드는 자유잖아. 실용은 버리더라도 자유.”
“테슬라는 구독도 해야 하고, 주행 정보 같은 것들을 다 본사로 보낸다더라고. 자유랑은 정반대야. 중고 매매도 본사 통해서만 할 수 있다고 하고.”
“자율주행 데이터 때문일까. 그게 정책인가 보구나.”
“응. 이해는 간다만, 미국 내에서는 구매가 아니라 대여쯤이라고 비난도 하더라.”
“일시불 구독 경제 같구나.”
“아마 인터넷이 안 됐다면 차의 가치가 절반으로 줄었겠지.”
월요일의 파트너
1.
“오늘 낮에 엄청나게 더울 거랍니다. 무려 30도가 넘는다고.”
“곧 장마도 온다면서요.”
“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의 술친구가 되어주실 분을 구합니다.”
“저는 맥주가 좋은데.”
“수락하시는 건가요?”
“몇 시까지 먹게 될까요?”
“다은님이 허락하는 때까지입니다.”
“금요일이면 늦게까지 마셔드릴 수 있는데 월요일이라.”
“괜찮습니다. 저는 고기 한 점도 행복해요.”
“좋습니다.”
“독대가 성사되었다.”
“○○님 오늘 차 안 가져왔어요?”
“건물 지하에 잘 계십니다.”
“그럼 집에는 대리로?”
“아뇨.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어차피 내일도 일찍 일어날 테니 괜찮아요.”
“○○님이 지하철이라니.”
2.
“이번 주말에 비 온대요.”
“저는 집돌이라.”
“그래서 갑자기 파전이 생각났는데,”
“오. 소주 한잔할까요?”
“오늘 눈 뜨자마자 술이 고프길래 우리 캡틴에게 독대 신청해뒀어요. 세운님에게는 요일 선택권을 드립니다.”
“오늘 갑시다.”
“오늘요?”
“끼워만 주신다면. 요즘 고민도 있고요.”
3.
“다은님이 좋다고 합니다. 우리 이따가 고기 먹을까요?”
“좋습니다. 매우 좋습니다.”
핑크 베이지
꿈을 꾸면 주로 어떤 동네가 나와요. 블록-블록에 큰길로 도는 골목에, 하도 많이 봤더니 이제 길도 다 알고 단골집도 있고 그래요. 꿈을 자주 꾸는 편이거든요. 언젠가 그 동네에 살았나 싶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적은 없어요. 막 도시까지는 아닌데 그렇다고 시골도 아니고요. 신기하죠? 몸에 뭐가 들어오거나 달려들어서 싸우는 꿈도 자주 꿔요. 생각이 많으면 꿈도 자주 꾼다면서요. 저는 잡생각도 없는데 왜 그럴까요.
이 꿈은 아까워서 나만 알고 있었는데 일주일 넘었으니 얘기해 볼게요. 어느 동산 같은 곳에 혼자 올라갔는데 갑자기 하늘이 열리더니 뭐가 나타났어요. 시계태엽같이 복잡하고 큰 거였는데 안으로 길이 나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어마어마했어요. 너무 멋있어서 사진 찍어다가 사람들에게 보여줘야지 생각도 했고요. 그런데 그날 혹시나 해서 사본 연금복권은 전부 꽝이었어요. 꿈은 정말 비범했는데 말이죠. 꼭 시계태엽처럼 생겼는데 시계는 아닌, 그게 뭐였을까요. 무슨 공장의 큰 기계 같기도 했고. 아무튼 그런 게 하늘에 있었어요. 핑크 베이지 같은 느낌으로. 진짜 엄청나게 예뻤어요. 신기하지 않아요? 잘 될 꿈이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