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새벽,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맨정신으로는 마주할 수 없는 어떤 큰 사건을 앞에 둔 것처럼 옷을 여미었다. 수많은 질문과 그에 대한 핑계가 떠올랐지만 왜 무시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모른척하며 살았는지 언젠가 모두 설명할 수 있길 바라며 걸음을 재촉했다. 거리에 아무도 없을 시간대에만 움직이는 것은 내면에 대한 반항 때문이었다. 그 은밀함 속에서 나는 자유를 느꼈다. 누군지 모를 대상으로부터 숨어야 한다는 긴장감에서 벗어나면 비로소 나 자신이 될 수 있었다. 나는 걸으면서 영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면 거리는 작은 소음마저 사라져 무성영화의 한 장면이 되고, 나는 그 안에서 허공을 걷는 사내가 되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발견될 것이었다. 누군가에 의해, 나는 결국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진실은 어떻게든 퍼지는 법이니 교수대에 끌려가는 사형수처럼, 헐벗은 건달이 온몸에 상처를 입고 신음하듯 그렇게 맨몸뚱이인 채로 밝혀져야 했다. 그리고 그날이 오면 나는 이미 거리에 남아 흩어진 모래에 지나지 않을 테니, 뭐가 되든 괜찮을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기다리지 않았다. 나는 그저 사람이 없는 거리를 걸었고, 영혼의 노래를 부르며 안식을 찾았다. 그리고 해가 밝아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영혼의 탑은 점점 거대한 요새가 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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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노래
누군가에게 그림자가 지기 시작하면, 그것을 저지해선 안 됩니다. 꺼져가는 빛은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어요. 처음부터 내부에 있지 않았던 사람은 마음속에서 빠져나가기도 쉽다지요. 그도 자신이 이방인이란 사실을 알았을 겁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마음을 차지한다는 것은 도둑질과 같은 일이라고 했겠지요. 지난달엔가, 집 앞에서 우연히 봤을 때 그는 마치 기운이 다 빠져나간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종종 마주치던 사이라 그날도 웃으면서 인사를 하려는데 그가 대뜸 묻더군요. 기르던 짐승을 죽여본 일이 있냐고요. 아실지 모르지만, 저는 짐승을 길러본 일도 없습니다. 그래서 무슨 말이냐고 되물으려다가 그냥 아뇨, 그런 적 없어요, 라고만 했는데 그는 아무런 표정 없이 서 있다가 그대로 가버리더군요. 그날 이후로 그를 마주친 적이 없습니다. 대문은 물론이고 창의 커튼도 항상 닫혀있기만 했지요. 그게 마지막인 줄 알았다면 이유라도 물었을 텐데요. 어쩌면 그에게는 반복되는 일상이 그저 고통이었을지 모릅니다. 삶이 지겨웠던 탓이거나요. 누군가 말하길,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이야기는 사라진다고 합니다. 바람에 씻기기도 하면서 모두 희석되고 나면, 마음속에 남는 건 상상뿐이라고요. 그때가 되면 우리가 존재했었다는 사실도 거짓이 되겠지요. 저는 빛이 꺼져가는 게 두렵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차지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고요. 언젠가 당신도 덤덤해지는 날이 오겠지요. 어차피 우리는 다 이방인입니다.
고요한 밤
우리는 모두 그의 관념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그가 하는 이야기들을 마치 우리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들어주곤 했지요. 그에게는 충분하지 않았을 수 있지만, 우리는 각자 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으로 그를 이해했다고 생각해요. 그는 가끔 생소한 언어로 말할 때도 있었어요. 어느 나라 말인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었던 건, 오직 그 이야기를 할 때만 그의 목이 잠겼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최소한 그가 집에 있는 동안만큼은 고통받지 않았길 바라요. 그 넓고 환한 공간에서 사는 것에 어떤 대가가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누군들 외롭지 않겠어요. 너무 긴 시간인걸요. 매일 수많은 사람과 만나고 북적이면서 잠시 잊을 수는 있겠지요. 그리고 어느 날 아침잠에서 깨어난 뒤 밤새 아무에게서도 연락이 없었다는 걸 알면, 유독 종일 전화가 울리지 않으면서 내 연락을 받는 이도 없다면, 그리고 밤이 깊어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을 때면 누구라도 결국 혼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걸요. 그 어느 때보다 조용한 아침, 평화로운 오후, 고요한 밤, 이게 다 외로운 하루를 애써 가꾸는 언어라는 사실도요. 우리는 그가 결국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고 생각해요. 가고 싶은 사람은 가야죠. 여기 머물 이유가 없잖아요.
껌딱지의 운명
너를 버리려는 사람이 있거든 먼저 도망치도록 해. 그가 널 친구로 생각하는지, 혹은 지나가는 바람일 뿐인지 그 눈빛만 보면 알 수 있어. 너와 많은 걸 함께 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일 년은 지켜보도록 해. 사람과 사람이 무언가를 함께 한다는 것은 아무리 애를 써도 풀리지 않는 과학과도 같아. 절대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을 어떻게든 섞어보려고 수많은 실험을 거듭하지만, 남는 것은 그 시간 동안 뒤적인 책의 분량과 그로 인해 깨닫게 된 세상의 섭리뿐이지. 그렇게 얻은 경험에 그가 한두 주먹 포함된다면 조금씩 마음을 풀어봐도 좋아. 그리고 너를 꼼짝 못 하게 묶어두려는 사람이 있다면 긴장하도록 해. 그 의도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거든. 나는 가끔 우리가 바닥에 붙은 껌딱지 같다고 생각해. 밟으면 밟는 대로 단단해지고 웬만해서는 떨어지지도 않지만, 혼자서는 일어날 수도 없지. 누가 힘껏 떼주면 그제야 아, 살았다, 싶지만 껌의 운명이 쓰레기통 말고 뭐 있겠어? 처음엔 보들보들한 가루에 싸여 예쁜 옷도 차려입고 하지만 한 번 사용되고 나면 버려지는 거야. 그 뒤는 알아서 살아가야 하지. 오늘을 마주한다는 것은 어지러우면서도 두려운 일이야. 갑자기 찾아온 사람도 그래. 매일 아침 우리는 도망칠 준비를 하느라 바빠. 어제는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나, 오늘은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지만 이미 오랜 시간 해온 일이야.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알겠지. 뭐, 나도 최대한 너와 많은 걸 함께 하고 싶어. 꼼짝 못 하게 옭아매겠다는 생각도 가끔 해. 기분 좋아지라고 하는 소리니까 지켜보고 말고 할 것은 없어. 나는 눈빛을 낼 수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