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 들어가 보지도 않고 거기가 어떤 곳인지 어떻게 알지? 늘 모든 일이 중요하다면서도 네 피부에 닿는 건 없잖아. 용기에 관해 말하려면 문이라도 열어 봤어야지. 지금 너에게 필요한 게 뭔지 알아? 결론을 얻기 전에는 판단하지 않겠습니다, 하는 생각, 무관심, 영혼과의 각서, 너 그런 거 해본 적 없지. 일기처럼 써두고 며칠 해보다가 안 되면 또 쓰고, 종잇장에도 써서 호주머니에 넣고 며칠 살아보고, 무관심이 나쁜 게 아니야. 좋다, 싫다,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하고 뭐든 잡아보라는 거지. 어차피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어. 그리고 누가 본들 무슨 상관이야? 나는 그저 네가 주위만 빙빙 돌아서는 안 된다고 말해주는 거야.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건 없어. 삶은 결국 행동하는 것의 문제야.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냥 해도 돼. 갖고 싶은 게 있다면 붙잡고, 그렇지 않은 건 신경도 쓰지 마. 인생은 길어서 뭐든 새로 시작할 수 있어. 그러니 끝내고 싶을 땐 그냥 끝내도록 해. 그 이후에 오는 시간은 모두 네 것이고, 그 시간을 쓰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아. 나 그렇게 여유 있는 사람 아니다. 아무한테나 시간 내고 이야기 들어주고, 그런 거 안 한 지도 꽤 됐어. 겁먹지 마. 사람 그렇게 쉽게 안 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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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골의 숨소리
구름이 걷히는가 싶더니 비가 쏟아진다. 오늘 허락된 빛은 다 보았으니 커튼을 친다. 나는 비를 좋아하지 않아서 밖을 볼 일이 없다. 십여 분 전부터 벽을 타고 소리가 넘어온다. 누군가 망치질을 하는 것 같다. 소리는 벽을 넘어 천장으로, 바닥으로 퍼진다. 건물이 비에 젖기 시작하면 저 깊숙이 박힌 철골의 숨소리도 곳곳을 파고드는 법이다. 규칙적인 빗소리를 뚫고 전화 신호음이 울린다. 나는 의자를 당겨 앉으면서 무슨 말부터 꺼낼까 생각한다. 주인만큼이나 낡고 오래된 의자는 바닥에 깊게 파인 자국을 다시 긁고 지나간다.
거기도 비가 옵니까? 창문, 예. 물론이죠. 커튼까지 내렸으니 염려 마십시오. 저도 비 싫어하지 않습니까. 시작이 어려우면 끝은 쉽다더니, 그게 꼭 진리는 아닌가 봅니다. 이렇게 지지부진할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관심도 두지 않았을 텐데요. 주변에는 뭐라고 말해야 하나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하나쯤 손에 잡히는 것도 있어야지, 그래야 살만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도 들고요. 예, 뭐. 이래저래 잡음이지요. 벽에 걸린 올빼미가 허공을 향해 눈을 부라린다. 지난달 제자들을 데리고 몽골에 다녀왔다는 후배가 ‘집에 기운을 불어넣어 준다’며 들고 온 박제품이다. 나는 올빼미의 눈이 향하는 곳을 더듬다가 언제인지 모를 과거를 향해 경의를 보낸다.
어제로부터
생각이 두서없이 떠오를 때 나는 아직 살아있음을 느껴. 시계를 볼 때마다 한 시간씩 지나있는 날. 하루가 미친 듯이 흐르는 날. 내가 증발하려면 한참 멀었구나, 하는 날. 나는 종종 불안하면서 무서운데 그 대상이 뭔지 모르겠어. 누구에게든 물어보면 좋겠는데 생각나는 사람이 없어. 가끔 사람들이 나를 모함하는 게 느껴져. 나는 의심이 많거든. 모든 것에 만족하면서 살 수 없다는 걸 알아. 부지런한 게 항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 고민을 쌓아두고 사는 사람은 마음이 아파. 너는 여전히 보기 좋아서 다행이야. 어제로 돌아가고 싶으면 그렇게 해. 나도 잠이 들 때마다 오늘 이야기가 모두 사라지면 좋겠어. 아직 그만둘 수 없는 게 많아서 모든 게 어려워. 나는 이제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사람들도 나를 무서워하는 것 같거든. 신기하지. 우리는 서로 만난 적도 없는데 두려움을 느껴.
빠르
“별일 없지?”
“오늘 또 식구가 늘었어요.”
“이번엔 어디에서 왔다니?”
“강릉이요. 산 높은 곳에 살았대요.”
“잘 맞으면 좋겠구나.”
“저도 집을 옮겨보고 싶어요.”
“너는 아직 어려.”
“여긴 저보다 어린 친구들도 많은걸요.”
“지내기가 불편하니?”
“아니요.”
“창문 꼭 닫고 자거라.”
“혼자 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