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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큐어 생각

생각은 멈출 수 없다. 밥을 먹다가 쉴 수는 있어도 생각은 그럴 수 없다. 일을 하다가 사람이 보이면 그가 왜 여기에 있는지, 무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방금 했던 생각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일에 집중할 수 없을 땐 뭐가 문제인지 생각하다가 일에 몰두하기도 한다. 생각하는 게 일이라서 일을 한다는 것은 더 열심히 생각한다는 뜻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검은 스웨터를 입은 사람이 들어와 내 앞에 섰다. 머리가 길어서 어디까지가 머리고 어디부터가 스웨터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옆에 선 사람의 손가락에서는 매니큐어가 벗겨지고 있다. 아직 아홉 시가 되지 않았는데 이 사람들은 왜 벌써 출근하는 걸까 궁금하다. 언젠가 과외 선생님의 손을 보고 ‘매니큐어가 점점 작아져요.’라고 했더니 웃으면서 손을 오므리던 게 생각난다. 다음 날 선생님의 손가락이 깨끗해져 있길래 내가 ‘매니큐어 왜 지웠어요?’라고 물었더니 선생님은 ‘네가 뭐라 했잖아.’라고 했다. 그래서 조금 미안했다. 앞에 선 사람의 키가 커서 여기가 몇 층인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몸을 기울이며 자꾸 확인했다. 생각을 멈추지 않고도 잘 살아가려면 내리는 층 정도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

우산을 버리게

슬리퍼가 제일 쓸모 있을 때는 비가 올 때야. 신발 젖을 걱정 없지, 양말도 필요 없지, 물이 튀어도 슬리퍼니까, 금방 마르는데 뭐 어때 하는 거지. 발가락 사이에 줄이 들어가는 걸 쪼리라고 하지? 그건 좀 불편했어. 바닥이 젖어서 한번 미끄러진 적이 있는데 그 줄 때문에 아프더라고. 물론 시원하기는 슬리퍼에 비할 바가 아니지. 일단 발등이 훤하잖아. 비가 씻어주기도 하고.

오후에 비 소식 있다며. 나는 말이야, 가끔 우산 없이 다니거든. 무겁잖아. 번거롭기도 하고. 작고 가벼운 건 들고 다니기는 편한데 우산 구실을 못 하고 긴 건 무겁지. 무겁고 귀찮고 그래. 가방에도 안 들어가니까 계속 손에 쥐고 있어야 하고. 비? 맞는 거지 뭐. 우산도 없는데 어쩌겠어. 근데 되게 시원하다. 그렇게 안 다녀봤지? 머리 대충 묶고 티셔츠 하나 입고 나가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는 거야. 맨발에 슬리퍼 신고, 천 쪼가리 조금 걸친 게 딱 자연인 체험이지. 그래서 가끔 뉴스에서 내일 비 온다, 곧 장마철이다, 하면 괜히 설레기도 해. 웃는 거 봐. 진짜 시원하다니까. 언젠가 너도 꼭 해봐. 시작은 어려운 법이니까 내가 같이해줄게.

미안하니까

상처 나고 때 타고 하면 나도 아프거든. 시간 지나면 곪기도 해. 색깔도 변하고 냄새나고 미끌미끌해지고. 네 몸은 부지런히 닦으면서 왜 나는 그냥 두는 거야? 매일은 바라지도 않아. 가끔 신경은 좀 써주면 안 될까? 이러더라니까. 아프다고, 어떻게 뭐라도 좀 해달라는 거야. 눈빛으로 애원하는 거 본 지가 몇 달짼데, 이번에도 지나치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래서 했지. 두어 시간 걸렸나. 진짜 힘들더라. 오랜만이라 그런지 때도 엄청 많고. 미안했지. 처음엔 수세미로 닦다가 나중에는 손으로 문질렀어. 진짜 친구 닦아주듯이 말이야. 자주 봐주겠다고 약속도 하고. 그래도 다시 밝아진 거 보니까 좋더라. 생각난 김에 소독도 해볼까. 나 건식 써보고 싶어. 아니면 물기가 있어도 금방 마르는 구조던가. 아니다. 지금도 햇빛은 잘 들어오잖아. 미안하게 또 그래. 아프지나 말았으면 좋겠다.

오브젝트

순간이동은 아니고 시차가 있긴 한데 여기 물건을 넣으면 다른 곳으로 옮겨져요. 이 구멍에 쑥 빠졌다가 반대편 구멍에서 발사되듯 나오는 건데 이때 방향을 잡지 않으면 다시 빠졌다가 여기, 처음 들어간 곳으로 나와요. 그렇게 계속 반복할 수도 있고 그냥 위치를 벗어나도 되고요. 한 구멍에 들어가고 있을 때 다른 곳에서 바로 나오기 시작해도 멋질 텐데 그건 특허가 있다더라고요. 표현 방식에 대한 거라나, 아무튼 그래서 시차는 두어야 해요. 참, 사람도 됩니다. 물건 말고, 우리가 직접 들어가도 된다고요.

조작하면 날아가는 거대 폭죽도 있는데 큰 포에 거대한 알이 들어 있어서 그 위에 올라타면 발사될 때 같이 날아갈 수 있어요. 버튼을 누르고 폭죽 알에 잘 붙어있기만 하면 됩니다. 하늘을 나는 거예요, 슈퍼맨처럼. 거대 진자나 회전체, 압력 기둥 같은 것도 있는데 사실 이런 건 생각하기 나름이라 백 개라도 만들어낼 수 있어요. 문제는 여기에 어울릴까 하는 건데 우리 그 얘기는 수없이 했죠? 해보기 전에는 모른다고. 다 만들고 나서 막상 보니 재미없다, 뭐 그럴 수도 있어요. 일단 전송하는 것부터 해볼게요. 다른 내용도 있으니 문서는 한 번씩 봐주시고요. 아, 데이터라고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