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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보다 연필

개근상을 받았다. 한 달 동안 지각하지 않고 잘 나온 것에 대한 상이란다. 학교를 졸업한 뒤로 처음 받는 상장이 반갑고 신기하다. 나도 뭔가를 꾸준히 할 수 있다니, 놀라운 발견이다. 매일 아침 출근하면 제일 먼저 커피믹스를 마신다. 커피 기계보다 ‘아메리카노’보다 맥심이 좋다. 맛있고 달아서, ‘난 척’ 없는 맛이 편해서. 날씨가 덥다가 서늘했다가 여름을 맞이하느라 들썩인다. 겨울에는 철원보다 춥더니 이제 그 덥다는 대구보다 서울 기온이 높은 날을 본다. 오락가락한 건 내 마음뿐인 줄 알았는데 날씨가 함께 해주니 고맙고 좋다. 자연에서 위로를 받고 있다.

오랜만에 이젤 앞에 앉았다. 그림을 그리지 않은 지 꽤 되었다. 색 만들기는 고사하고 선 하나 긋는 것도 힘들다. 펜보다 연필이 좋았던 때도 있었는데 아마 재미를 잃은 게 아닐까 싶다. 본래 그림을 그리던 사람도 아니고 화가를 꿈꾼 적도 없다 생각하니 마음은 편하지만, 한동안 좋은 취미였던 게 나를 떠난다 생각하면 아쉽기도 하다. 취미는 돌고 도니까 그림 또한 돌고 돌아 언젠가 다시 손에 잡히기를 희망한다.

윤정해

바르게 살아라. 항상 밝고 뜨거워라. 한여름 중천에 뜬 해처럼 빛나기만 하여라. 아빠의 수첩에서 발견한 짧은 글 제목에는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언젠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우주 찬가라고 했다. 바를 정에 해를 부를 때 쓰는 그 해라고. 그래서 아니, 이름 말고 글이랑 제목, 이것들의 의미가 뭐냐고 물었더니 ‘그냥 너’라고 하면서 웃었다. 아빠는 웃으면 장난꾸러기가 된다.

내가 아기였을 때 우는 것을 본 어른은 손에 꼽는다고 했다. 나를 처음 받아낸 의사와 엄마, 아빠 정도인데 잠을 깨거나 배가 고파도 우는 일이 없어서 키우는 데 애를 먹었단다. 처음엔 조용해서 좋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애가 뭘 원하는지 알 길이 없으니 답답할 만도 했겠구나 싶다. 다행히 말을 일찍 배워서 밥, 엄마, 졸려, 같은 단어로 원하는 걸 표현했다고는 하는데 이제 겨우 말을 배운 아기가 ‘졸려’라고 했다고, 아빠의 진술에 의하면 발음도 꽤 좋았단다.

이름 덕분인지 유난히 밝은 아이였다고도 한다. 시끌벅적한 어른들과 있어도 방긋 웃기만 했다는데 누군가 ‘얘는 무슨 말인지는 알고 웃는 거야?’ 하고 물으면 오히려 더 크게 깔깔대며 웃었다고 한다. 그래서 종로든 명동이든, 엄마의 젊은 날 사진에는 항상 내가 같이 있었던가 보다. 떨어져 있으면 투정이 심해서 그랬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라 뭘 봐도 웃기만 하니까 기분이 좋아서 자꾸 데리고 다녔다고, 나는 엄마와 아빠의 젊은 날 마법 가루 같은 존재였단다. 몸에 뿌리면 웃음이 절로 나오는 뭐, 그런 거라고. 그러니까 아빠의 낡은 수첩에 있던 글은 주문이었던 거다. 내 삶이 항상 빛나기를, 밝고 뜨겁기만을 바라던 한 젊은 날 장난꾸러기 같던 남자가 쓴 ‘정해’라는 주문.

바르게 살아라. 항상 밝고 뜨거워라. 한여름 중천에 뜬 해처럼 빛나기만 하여라. 너는 웃음을 모를 때부터 웃었으니 언젠가 슬픔을 모르고 울 날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빛을 잃지 말아라. 네 심장이 뜨거운 만큼 너는 쉽게 지치지 않을 것이다. 금세 일어나고 다시 뛸 것이다. 언제나 밝은 해처럼 네 삶은 빛날 것이다. 내일도 모레도 변함없이 빛날 것이다. 그러니 바르게만 자라다오. 내 거울아, 행복하게 살아다오.

새는 쉬고 있다

새가 날아든다. 두 마리가 짝을 짓는가 싶더니 하나는 멀리 날아가고 다른 한 마리는 길가에 남았다. 새는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면서 걷다가 멈췄다가 한다. 자동차 한 무리가 지나가면서 눈앞을 꽉 채우더니 사라진다. 길 건너편 남자가 새를 본다. 새는 그의 그림자를 밟고 있다. 그는 가방을 열고 뭔가를 찾는가 싶더니 고개를 젓는다. 나는 그의 그림자를 보면서 키가 크다는 생각을 했다. 버스가 지나가면서 다시 눈앞을 지우더니 사라진다. 새가 그를 보고 있다. 새는 도로를 봤다가 나를 보고, 다시 그를 본다. 그의 안경이 까맣게 빛난다.

나는 새가 왜 날아가지 않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새는 날개가 고장 났을 것이다. 다른 짝이 먹이를 구해오는 동안 여기서 기다리기로 했을 것이다. 마침 길 건너편 남자의 그림자가 좋은 쉼터가 되었을 것이다. 짝이 돌아오면, 그래서 밥을 먹고 기운을 회복하면 곧 다시 날아갈 것이다. 최소한 도로를 벗어나 가까운 나무에라도 갈 수 있을 것이다. 새는 그냥 쉬고 있을 뿐이다.

가려움

너의 아침을 사랑했던 적이 있다. 꿈이 지나간 빈자리를 감당하기 싫어서 너는 잠에서 깨면 바로 침대를 벗어난다고 했다. 미련 같은 건 두지 말자고, 애를 써도 언젠간 다 잊힌다고 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막 도망친 꿈이 머리에서 증발하는 것을 본다. 에어컨 바람을 피해 몸을 감싼 이불 속에서 나는 최대한 작아진다. 찬 바람은 막았지만 가려움이 몸을 덮는다. 눈을 감고 다시 잠이 들기를 기다린다.

너는 그리움을 모른다 했으니 네가 떠나고 남은 이 감정도 그리움일 리는 없다. 사람들의 무기력이 요즘 내 식욕을 병들게 하는 것 같다. 나는 몸을 더 작게 웅크린다. 가려움은 등을 지나 허벅지와 종아리로 퍼진다. 나는 너의 허무도 사랑했던 적이 있다. 그 감정이 멋지다는 생각을 하면서 세상을 허무하게 보는 연습을 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서야, 내가 안다고 떠드는 이야기들이 사실은 다른 누군가가 잠시 풀어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기분이 조금 상했다. 그리고 그 덕분에 그리움을 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