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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안에서

가끔 기분이 정말 좋아지는 음악을 발견할 때가 있잖아요. 저는 그럴 때 뭐라도 쓰고 싶어져요. 누구에게든 얘기하고 싶거든요. 나 이렇게 기분이 좋다고, 같이 느끼자고요. 그런데 그렇게 쓰기 시작한 글은 항상 정리가 되지 않아요. 감정으로 시작해서 감정으로 끝나는데 그게 딱, 지금 같거든요.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본인도 모르는 거죠. 내가 이렇게 기분이 좋은데, 이 감정을 나눠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거예요. 심지어 내 감정을 궁금해할 사람도 없는데 말이죠.

표현은 종종 안 하느니만 못한 것 같아요. 나만 알고 있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하는 생각 누구나 한 번쯤은 하잖아요. 물론 이야기가 생산되는 순간에 마음을 다잡는 건 힘든 일이긴 해요. 어디든, 누구에게든 어서 이 멋진 생각을 퍼뜨리고 싶으니까요. 그래도 우리는 평온을 찾아야 해요. 힘들 땐 심호흡이라도 하면서요. 마음은 마음 안에 있을 때 더 아름다운 법이잖아요. 혹여나 정제되지 않은 이야기를 어딘가 흘렸다면 빨리 잊도록 해요. 어차피 사람들이 우리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건 일분 남짓이에요. 우리가 그들의 이야기를 금방 잊는 것처럼요. 그러니 너무 상심하진 말아요. 잠시 감정에 솔직했던 거라 생각하자고요.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음악이 모두 끝난 뒤에 해도 늦지 않아요. 언젠가 우리도 성숙해지는 날이 오겠지요.

오렌지

어릴 적 꿈이었다고 했다. 사람들이 커피에 대해 물으면 네 눈에선 빛이 났다. 너에게서는 항상 특유의 향이 났고 나는 너를 보는 게 좋았다. 가끔 그 눈 속에서 나도 빛난다는 생각을 했다. 커피를 마셔본 일은 없지만 너를 통해 향을 알았다. 함께 있으면 모든 게 좋았다. 그리고 지금 오랜만에 너의 머그잔을 본다.

일 년 전 카페를 정리한다고 했을 때 사실 난 예감하고 있었다. 네 눈이 빛을 잃어가고 있었던 때다. 그날도 넌 새로운 삶에 대해, 제주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아직 너를 보는 게 좋았지만 네 눈 속에 나는 더 이상 있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한때 내 것이기도 했던 너의 머그잔을 바라본다. 익숙한 건 겉에 남아있는 그림뿐, 모든 게 낯설다.

저녁 하늘이 유난히 붉다. 창밖 노을 따라 네 머리도 붉게 물든다. 너는 이야기를 계속한다. 머그잔에 담긴 커피에서 내가 알던 것과 다른 향이 난다. 아마 귤 재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제주의 날씨는 어떠냐고 묻자 네 눈이 반짝 웃는다. 네가 입을 뗀 잔에는 옅은 오렌지가 남아 있다. 창밖은 이제 그림자도 붉게 물들었다. 나는 잠시 너를 그리워한다.

비 오는 날의 순대

마지막 출근길에 비를 맞으면 행운이 깃든다고, 모르는 번호에서 문자가 온다. 그런 소리를 할 사람은 한 명뿐이지만 오늘은 모른척해 준다. 이 누님의 발걸음이 가벼운 날이니까. 번호는 또 언제 바꾸었나 모르겠다. 들쭉날쭉, 네 인생은 항상 그런 식이었다. 그래서 나도 여기까지 오고 말았지만. 이게 다 비가 와서, 비 오는 날 순대를 먹었기 때문이다.

하필 현금이 없을 줄 누가 알았겠냐고, 그 순간의 넉살이란. 네가 웃을 때 눈이 사라진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당연하지. 만난 것도 처음인데. 흰 티에 빨간 바지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빨간색은 등산객들이나 입는 건 줄 알았는데 말이다. 그날도 비가 왔다. 운동화가 다 젖었다며 너는 나를 신발가게로 끌고 가더랬다. 나중에 본 그때 사진에서 나는 한 손에 튀김 봉지를 꽉 붙잡고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부츠는 아직 잘 있다. 덕분에 마지막 출근길에 발이 젖지 않으니 조금 고맙기는 하다. 창창한 앞날을 두고 시답잖은 생각이라니. 행운이 깃들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오늘은 네 모든 과오를 잠시 덮어주기로 한다.

지금 이대로

가끔 달력을 보다가 방황을 한다. 오늘을 찾기 위해 어제, 그제의 기억을 살리는데 지난 주말까지 떠올려야 할 때도 있다. 날짜를 모르고 산지 오래되었다. 회사를 다녀야 하니 월요일은 기억하지만 나머지는 금세 잊고 만다. 금요일은 쉬고 싶을 때쯤 찾아온다. 종종 하루가 너무 느리다는 생각을 한다. 할 일을 자주 잊는 것도 그래서인지 모르겠다. 시간은 나와 다른 속도로 사는 것 같다.

눈앞이 흐리면 안경 탓을 한다. 렌즈를 닦으면서 어쩌다 안경이 나와 하나가 되었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그림을 그릴 때도 있다. 눈앞이 흐린 이유가 렌즈에 남은 추상화 때문이라는 걸 알면 나는 안경을 바꾼다. 왜 그렇게 일찍 안경을 주었냐고, 왜 내 몸과 하나가 되게 두었냐고 원망한 적이 많다. 하지만 안경에게는 죄가 없었다. 나는 가끔 렌즈 뒤에 숨는다.

월요일 아침마다 마음이 묻는다. 네 욕심은 어디에 있느냐고, 열심히 사는 방법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다. 다음 날, 그다음 날까지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하루쯤 욕심을 놓으면 금요일이 온다. 안경을 벗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게 희미할 때 나는 투명 인간이 된다. 해가 기울고 기분이 좋아지면 머리가 대답한다. 모릅니다. 나는 욕심을 원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대로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