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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준의 레모네이드

갓 잡은 명태에서 비린내가 난다며 그 난리를 치던 그였다. 평소 쓰던 칫솔에 치약을 잔뜩 묻혀서는 장화 주변이 비늘로 번들거릴 때까지 닦고, 또 닦았다. 잊고 있던 벨 소리가 들린다. 언제 들어도 바로 알아야 한다며 열심히 음을 바꾸던 게 이런 의도였을까. 사람 냄새엔 관심도 없으면서 생선만 보면 그리 집착을 하더랬다. 밥을 먹은 뒤에도 양치보단 레모네이드가 편하다고, 그거면 되지 않냐고 되묻다가 웃었다. 그는 웃으면 눈이 사라진다. 시간 지나 봐, 그거 다 의미 없다. 들어도, 들어도 와닿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요즘은 너한테서 생선 비린내가 나는 것 같아. 치약? 그게 다 뭐라니? 두고 봐라, 이름도 까먹을걸. 버릴 수 있을 때 버려. 쓴소리는 가끔 꿈에서도 듣지만 그래도 하나는 맞았다. 나는 네 이름을 잊었으니까. 발치에서 명태 비늘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휴대폰 액정의 낯선 너는 누구인지 모르겠다. 통화 버튼을 누르고 라디오를 틀었다. 방금 도착한 사연이, 여보세요? 경기도 안양시에서, 여보세요, 오늘 바깥이 소란스러워요, 무슨, 저희 집 앞에 초등학교가, 여보세요? 있거든요. 언젠가 그 앞을, 어디, 지나는데 길가에 사람들이, 이따가, 모여 있었어요. 항상 차들도 많이 다니는 거린데 그날은 한 대도 없더라고요.

토막 문장 사건

어서 오세요. 토막 문장에게 희망을 주는 공간입니다. 기부를 하셔도 되고 가격이 맞으면 제가 사기도 합니다. 사실 일을 시작한 지 5년이 지났는데 성과가 신통치 않아요. 문장이 모이는 속도도 느리고, 찾는 분들도 없고요. 그래서 이렇게 지면을 빌려 보기로 합니다. 저희 사무실은 서울 동남쪽에 있어요. 방문이 필요한 건 아니니 오해는 마세요. 명함을 만들다 보니 주소가 필요했거든요. 물론 오시면 기념 책자 정도는 드려요. 작년에 출간된 ‘문장의 수난사’가 제 방에 백 권쯤 쌓여 있답니다.

오래전 누가 그래요. 토막은 완전체가 있었다는 전제가 필요한 거 아니냐고요. 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언젠가 있을 예정이지만 아직 없다면 뭐, 미래에서 왔다 쳐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여기는 예정 없이 불쑥 나온 문장을 수집하는 곳인 겁니다. 어차피 그 문장들이 언제 빛을 볼지도 모르고, 또 주인 없는 글이 워낙 많기도 하고요. 한때 누군가에게 소중했던 문장이 다른 누군가에겐 쓰레기가 될 수도 있겠지요. 여하튼 그래서 저는 토막을 계획되지 않은, 혹은 예정에 없다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사람마다 배우는 시간이 다르듯 문장도 성장하는 시간이 다 다르니까요. 여담이지만, 사실 문장 같은 건 천 개쯤 세상에서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걸요. 그러니까 저는 수많은 문장에게, 토막 문장에게 정말 희망을 주는 셈이에요. 언젠가 멋진 글이 될 수도 있다고요.

영업시간이 의미는 없지만 사무실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열려 있어요. 혹 방문하실 예정이면 미리 연락 주시길 바라요. 한동안 출근이 뜸했는데 하필 직원도 저 혼자거든요. 그래도 나름 잘 꾸며두어서 볼 만은 할 겁니다. 사무실에 나무가 이렇게 많다니! 분명 놀랄 테지요. (제가 커피도 좀 타거든요.) 그럼, 오늘도 문장이 당신과 함께 하기를! 그럼, 길 잃은 문장이 어서 빛을 찾기를! 안 되겠어요. 마지막 부분은 다시 드릴게요. 그리고 쓰다 보니 그동안 문제가 뭐였는지도 조금 알 것 같아요. 참, 제가 식당을 하나 봐두었는데 이따 같이 가실래요? 묻고 싶은 게 많아요.

다른 것

기다려봐. 이게 여기를 열면, 보여?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잘 봐봐. 저게 거울이거든. 나 안경 쓰고 올게. 아니, 그럼 더 보기 힘들어. 여기 눈 가까이 대볼래? 약간 왼쪽에, 반짝이는 거. 어디서 난 거야? 봤어? 신기하지 않니? 으응. 안 봤구나. 아냐, 봤어. 신기한데 난 네가 이런 걸 갖고 있다는 게 더 신기해. 전에 터키 갔을 때 사온 거야. 거기선 행운을 비는 물건이래. 처음 만나는 사람한테 선물도 하고 그런다더라. 색깔 특이하다. 이걸 뭐라 하지, 청록이니? 터-쿼이즈라고 하는 거야. 뭐, 비슷해. 암튼, 내가 진짜 아끼는 건데 너 보여주려고 들고 온 거다. 그래, 예쁘다. 난 터키 하면 게스트하우스에서 먹은 토스트만 생각나는데. 그때 거기? 응. 참, 총각은 잘 지낸다니? 누구? 모르는 척은. 왜, 너 한참 얘기했잖아. 어딘가 있겠지. 그래서 이제 공부는 다 한 거야? 모르겠어. 여행이나 좀 더 다닐까 싶기도 하고. 이거나 먹어봐. 너한텐 맞을 지도 모르겠다. 이게 뭐야? 그때 비행기에서 먹은 건데, 오면서. 아, 전에 얘기한 그거구나. 응. 난 푸석해서 별로더라. 근데 나 진짜 뭐 하지? 너 그거, 내가 항상 너한테 묻던 거잖아.

을지로

“왜 모른척해요?”
“아니라니까.”
“뭐예요, 표정.”
“바빴어. 오늘 사람도 많았고.”
“나 봤잖아요. 손도 흔들었는데.”
“미진아,”
“그리고 아깐 한가하던데요.”
“너 나 관찰해?”
“제가요? 관찰은 선배가 했죠.”
“이따가 얘기하자. 일 마무리 좀 하고.”
“여기 앉아도 되죠?”
“그래. 아니, 저쪽에 앉으면 안 될까?”
“알았어요. 근데 왜요?”
“입구잖아. 추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