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Blog

태양소년

집 앞 공터에서 누가 영상을 만든다. 밤하늘 여기저기 달과 지구와 별들을 놓고 특수효과로 마무리한다. 나는 휴대폰을 들어 하늘을 찍는다. 조금 있다 만나면 보여줘야지 싶다. 밤공기가 좋다 생각하는데 어르신이 흰옷을 입고 지나간다. 머리를 까맣게 염색해서 못 알아볼 뻔했다. 웃는 모습이 여전하다. 넌 새해 인사도 없냐며 서운해하시길래 달려가 팔짱을 꼈다. 대문까지 따라가 인사하고 나니 같은 건물 일 층이다. 약속시간이 다 되어 부지런히 걷는다. 몇 년 만에 낀 반지가 어색하다. 영상을 보여주고 어르신 만난 이야기도 해야겠다. 오랜만에 마음이 편안하다.

잠에서 깨는데 어릴 때 본 만화가 생각난다. 결국 만났을까 모르겠다. 역시 마지막 기억이 없다. 노래가 자꾸 맴돌아서 찾아 들었다. 모험의 날개를 활짝 펴라, 태양소년 에스테반. 젊은이 사전을 펼쳐봐라. 불가능이란 말은 없다.

환상 속에서

가까운 사람들의 이름을 잘 잊는다. 가끔 불러야 할 땐 눈을 보거나 몸을 쳤는데 이젠 익숙해서 그냥 이름을 묻는다. 사람들의 말을 듣다가 자주 놓치기도 한다. 둘이 있을 땐 되묻는데 여럿일 땐 나만 못 들었나 싶어 그냥 웃고 만다. 그래서 셋 이상의 자리엔 끼지 않으려 한다. 말을 하려면 생각을 해야 하는데 하고 싶은 말을 꺼내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 때를 놓치면 의미가 사라지니 결국 말도 안 하게 된다. 그래도 좋다, 싫다, 고맙다, 미안하단 말은 제때 하려고 한다.

눈은 사람의 미래를 본다고 했다. 귀는 과거를 듣고 입은 현재를 말하니 들은 만큼 말하고 또 그만큼 보는가 보다. 요 며칠 눈앞이 흐리다. 책을 보다가 고개를 자주 드는데 참고 보다 보면 금세 어지러워진다. 눈을 비비면 잘 보일 때도 있고 더 흐려지기도 한다. 오늘을 살다 보니 생각이 짧아지고 내일을 잊자 하니 꿈을 잊어간다. 하고 싶은 건 몰라도 할 수 있는 건 많고, 시간도 많다. 느리게 살자 했더니 모든 게 느려 보인다. 오늘도 안녕, 행복을 빈다.

다음에

요즘 아홉 시가 넘으면 잠에 드는데 꿈을 자주 꿔요. 한 꿈이 끝나면 깼다가 다시 잠들고, 하기를 두세 번 반복하면 아침이 옵니다. 실컷 자고 일어나도 해가 뜨기 전이니 창밖은 아직 까매요. 이틀 전 가까운 분의 상을 치르는 꿈을 꿨어요. 잠에서 깨고 연락해봐야지, 하다가 쑥스러워 말았는데 오늘 꿈에서 같은 분의 상을 또 치렀어요. 연결된 이야기는 아니고 그땐 그 꿈에서, 이번엔 이 꿈에서 각각 돌아가신 겁니다. 이틀 전 꿈에선 서럽게 울었는데 이번엔 덤덤해요. 해몽을 찾아보니 그분이 장수할 꿈이라고, 제게도 좋은 꿈이라는데 찝찝함이 사라지진 않아요. 명절이 지난 지도 얼마 안 됐으니 다음 달에나 연락해봐야겠어요.

일찍 잠든 지는 세 달쯤 됐어요. 처음엔 어떤 이유가 있었는데 지금은 해가 지면 졸리기 시작해서 그냥 잠드는가 봐요. 음악은, 잠자는 동안에도 내내 틀어둬요. 작년 가을부터 자장가로 제일 많이 들은 건 미샤 마이스키의 연주입니다. 마음이 동요할 때 듣기 시작했는데 어쩌다 보니 자장가가 됐어요. 아침에 딱히 뭘 하진 않아요. 책을 볼 때도 있는데 주로 누운 채로 공상을 합니다. 언젠가 하고픈 게 생기면 이야기해줄게요.

별사탕

꿈에서 친구들과 게임을 했다. 처음 주어지는 건물은 공동 소유라 견제가 심하다. 뭐든 먼저 짓는 게 유리하니 손이 바쁘다. 근처로 건물들이 빠르게 생겨난다. 새로 짓는 건 그 사람의 소유가 된다. 친구 하나가 반응이 뜸하다. 나는 건물을 늘린다. 유닛을 생산하다 말고 주변을 탐색한다. 뭘 해야 할지 고민하는데 옆에서 누가 말한다. 유닛 계속 뽑아야지. 오래전에도 들은 말인데 언제인지 모르겠다. 유닛은, 계속 뽑는 거야. 친구는 옆에서 내가 하는 걸 지켜보다가 실없이 웃는다. 뭘 하든 나보다 잘하고 항상 멋있다. 나도 잘하고 싶어서 친구들이 하는 걸 따라 한 적이 많다. 잠에서 깨고 보니 마지막 기억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