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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적인

집에 있는 게 고통이고 하루의 절반을 밖에서 보내야 기운이 충전되고, 그게 운명인가 했는데 얼마 전부터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새로운 것만 옳고 멋지고, 익숙함을 경계해야 한다 생각했는데 금년 들어서는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걸 자주 찾아요. 내키진 않지만 몸이 원하는 것 같아 따라가 보고 있습니다.

눈을 뜨니 일요일 낮인데 해가 쨍하지도 않고, 몸을 일으킬 이유도 생각나지 않아요. 작년이라면 대화를 시작함에 있어 서울 자주 오시나요, 언제 어디서 봅시다, 주량은 얼마나, 맥주 아님 소주, 집과 바깥, 익숙함과 새로움, 기억과 버림을 논해봅시다, 그냥 동네나 한 바퀴 걸읍시다, 그런 상투적인 얘기를 상투적이지 않게 했을까 싶은데 지금은 아무 생각이 없어요. 저는 요즘 하루의 반나절을 밖에서 보내는 대신 집에서 공부를 하고, 해가 지면 한두 시간쯤 아무 곳으로나 운전을 하다가 돌아오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지우개

그 이름은 어디로 갔을까. 비가 그치고 해가 뜬다. 거리가 소란스럽다. 한 시간쯤 지나니 도로도 자동차로 붐빈다. 아침을 지나 해가 중천에 뜬다. 구름이 몰려오는 상상을 한다. 사람들이 거리에서 사라진다. 자동차가 사라진다. 비가 오기엔 날씨가 좋으니 해를 없앤다. 하루가 사라진다. 사람을 지운다. 지구를 지운다. 비가 오면 좋겠다. 내년이 올 때까지 계속해서 비가 오면 좋겠다. 해가 사라지면 좋겠다. 언제나 지금처럼 구름이 가득하면 좋겠다. 나는 맑은 하늘이 싫다. 거리를 지운다. 자동차를 지우고 사람을 지운다. 나를 지운다.

받아들이다

인정받고 싶은 게 네 속마음이지. 별 것도 아닌데 우린 고민을 한다. 출구가 앞에 있는데 어디로 갈지 몰라서 나가질 못해. 빠른 길과 좋은 길, 편한 길을 두고 혼란을 겪는다. 선택은 잔인한 일이거든, 힘들기도 하고. 아침에 했던 고민을 늦은 밤 침대에 누워 다시 떠올리는 반복적인 삶. 네가 원하든 그렇지 않든 몇 시간 뒤면 지금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또 내게 묻겠지. 스스로 대답도 하고. 의미 없는 생각도 열 번쯤 반복하면 그럴싸해지고 스물, 서른 번이 지나면 상식이 되기도 한다. 공감을 바라지 않는다면 이미 지식인이다. 의심을 버리고 외톨이가 되어라. 혼자 우는 것보다 혼자 사는 세상이 낫다.

아름다운

밤을 새웠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깨어있는 시간은 소중하다. 아니, 그건 정신이 맑을 때 이야기지. 코드가 머릿속을 채운다. 운전을 해야겠다. 우선 자고 일어나 생각해. 무언가 하고 싶다는 건 자주 드는 생각이 아닌데. 그건 소중한 것이다. 눈을 감는다. 오늘의 나는 어제와 무엇이 다른가. 몇 시간 더 살았으니 그만큼 성장했겠지. 내 키는 얼마나 자랐나. 십오 년 전 이미 끝났어. 너는 이제 자라지 않는다. 그럼 뭘 기대할 수 있지? 내일도 쉰다는 것. 오늘 자고 일어나도 아직 오늘이라는 것. 아무나 갖는 기회가 아니니 오늘은 네가 누려봐라. 잠이 오지 않는다. 코드가 머리를 지배한다.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이 부족하다. 핑계는 저 세상에 갖다 버려. 잠이 온다는 어플을 켠다. 오늘의 나는 내일과 무엇이 다른가. 내일 가질 생각을 미리 알 순 없나. 호기심이 남았구나. 아니, 그런 건 이제 내게 없어. 자고 일어날 이유가 필요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