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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

언제 주무십니까? 곧 자려고요. 피곤했나 봅니다. 평소 같지 않게. 이십 대 끝자락이 쉽지 않아요. 예? 서른은 어떻게 살라고요. 전 세상을 뜰 겁니다. 서른 같은 건 갖고 싶지 않아요. 몇 주 뒤면 십이월인데, 한 두어 달 남았나요? 아뇨, 생일이 삼월이니까 다섯 달쯤. 계획은 있어요? 그런 거 없어요. 계획 짜는 건 겁쟁이나 하는 일인데, 전 그냥 하루가 삶의 시작이고 끝이거든요. 가끔 보면 철학자 같기도 하고. 책 싫어한댔죠? 네, 글씨만 보면 숨이 차서. 만화책은 본다면서요. 그림 보는 건 좋아요. 사진도 좋고. 내년 삼월엔 어디에 있을 것 같아요? 글쎄요. 하늘?

여행 가요. 친구랑. 아, 비행기 얘기구나. 어디로요? 남쪽 나라. 호주? 아뇨, 아프리카. 콩고 가보려고요. 밀림이 궁금해서. 뻔하지 않네요. 제 이름이 모든 걸 말해주죠. 그래서 희준 씨는 언제 자요? 전 멀었어요. 요즘 잠이 과해서. 아침보다 밤이 좋죠? 귀신 같이 맞추시네요.

기차

숙소에 도착했을 땐 이미 해가 지고 어두워진 뒤다. 짐을 대강 풀고 침대에 오르면서 보니 머리맡에 아이폰 독(dock)이 있다. 가까이서는 처음 보는 기계다. 분위기를 낼 수 있겠다 싶어 내 아이폰을 꽂고 음악을 고른다. 최근 다운만 받아두고 거의 듣지 않은 앨범이다. 당시 꽤 좋아했던 밴드라 같이 들으려고 일부러 아껴둔 것 같기도 하다. 가끔 몸 깊숙이 남는 음악이 있는데 최근엔 그 앨범의 일 번 트랙이 그랬다. 인생에 두 번쯤 올까 말까 한 새로운 시작, 올해는 나의 해가 된다 믿었던 순간. 오늘 아침 우연히 그 노래 제목을 발견하고 잠시 떠올린다. 아련하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은, 되돌릴 수 있다면 다른 선택을 하게 될까 궁금하기도 한,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삼십 분이나 했다.

그림 그리는 남자

홍 씨라고 했다. 모양새가 운동 좀 했겠다 싶은데 옷발이 무색이다. 충주에서만 이십칠 년, 서울은 이제 일 년 반 정도 되었단다. 키가 껑충해서 걷는 내내 그림자가 휘청인다. 잘 하는 게 뭐냐 물으니 그림을 그린단다. 화가는 아닌 듯싶은 게 남자치고 손이 곱다.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 말고, 글씨 쓰는 사람을 찾는다 하니 표정이 어두워진다. 한때 수묵화를 배운 적은 있으나 글씨와는 연이 없단다. 한 시간 남짓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지면서 곧 연락 주겠다, 했지만 금세 잊었다. 적임자를 찾지 못해 사업도 흐지부지되었지만 가끔 생각이 난다. 그림을 그린다면 글씨도 곧잘 쓰지 않았을까.

충주는 팔 년 만이다. 먼 거리도 아닌데 마음먹기가 쉽지 않다. 오래전 서류에서 본 주소가 생각난다. 동네 이름이 특이해서 유래가 있냐고 물었던 기억도 난다. 요즘도 그림을 그릴까 궁금하다.

거울

경쟁이 좋아서 사람들과 어울린다. 평가를 위해 만나고 분석을 위해 이야기를 듣는다. 서로 속상하면 기회가 줄어드니 미리 친해진다. 이기고 지는 것보다 높낮이를 재는 기분이 좋다. 이 사람보다 못난 것도 좋고 저 일을 언젠가 해볼 수 있겠지 하는 망상도 좋다. 주위에 누군가 머무는 일은 흔치 않아서 필요할 때마다 찾아다녀야 한다. 밥 먹자, 술 마시자, 얘기 좀 하자, 오래 가진 않는다. 결국 취미와 같아서 곧 새로운 놀이를 찾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서 거둔 눈은 거울로 향한다. 어제 만난 사람은 어제의 강민형이고 내일 만날 사람은 내일의 홍진웅이다. 오늘은 김순태와 밥을 먹기로 했다. 매일 다른 이름을 지으면 항상 새롭게 살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