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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고 로또 사기

한창 학생으로 살던 언젠가 돈을 엄청나게 만지는 꿈을 꿨어요. 그래서 그다음 날엔가, 살면서 처음으로 로또를 사봤어요. ‘인생 첫 로또’라는 생각에 들떠서 일주일 동안 온갖 상상을 했는데 결과는 꽝이었어요. 그때 누가 말해주길, 로또는 돈이 아니라 ‘똥 꿈’을 꿔야 한다더라고요. 그래서 ‘언젠가 나도 똥 꿈을 꾸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몇 년을 보냈는데 어느 날 진짜 ‘똥 꿈’을 꾸게 됐어요. 그런데 막상 꿈에서 똥을 보니까 기분이 별로였어요. 제 옆으로 똥 하나가 굴러떨어졌는데 너무 더러워서 피하게 되더군요. 옆으로 피하다가 손으로 살짝 만졌던 것도 같아요. 그리고 잠에서 깨어나 보니 제가 드디어 ‘똥 꿈’을 꾼 거죠. 그래서 이거다, 왔다, 해서 다시 로또를 사봤는데 5천 원이 당첨됐어요. 그나마 살짝 만져서 5천 원이라도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다음번엔 꼭 대범하게 만지자’ 다짐하면서 다시 몇 년을 보냈는데 어느 날 또다시 ‘똥 꿈’을 꾸게 됐어요. 이번에는 배경이 화장실이었어요. 여기저기 벽과 바닥 할 것 없이 많은 똥이 묻어 있었고 상당히 더러웠던 기억이 나요. 제 몸에도 조금 묻었던 것 같고요. 그래서 눈을 뜬 뒤에 진짜 왔다, 이번엔 진짜다, 싶어서 그날 오후에 다시 로또를 사봤는데 역시 결과는 5천 원이던가,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생각해보건대, 저는 그저 열심히 부지런히 살아야 할 운명인가 싶어요.

자유로운

1.
“자동차를 사기 전에 운전을 너무 하고 싶어서 유로 트럭인가, 그런 게임을 샀거든요. 그리고 맥주를 마시면서 트럭을 몰고 온 유럽을 누볐는데 그때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언젠가 유럽 여행할 때 면허 있는 사람들 좀 부러웠어요. 차 빌려서 외곽으로 왔다 갔다 할 때.”
“북한, 통일, 이런 거 저는 잘 모르지만, 만약에라도 북으로 가는 길이 열리면 진짜 너무 신날 것 같아요. 당장 자동차도 SUV로 바꾸고 유럽까지 갈 수도 있을 텐데. 몽골도 가고.”
“그러게요.”
“전에 그런 블로그를 봤어요. 우리나라에서 큰 차를 사다가 배에 싣고 러시아로 간 뒤에 거기에서부터 운전해서 아프리카까지 가는 이야기.”
“아프리카요?”
“엄청났어요. 그 블로그를 본 다음 날 저도 자동차랑 준비물을 막 알아봤어요. 하지만 저는 이제 월급의 노예라서 그런 삶은 힘들 것 같아요.”
“잠깐 쉬는 기간을 가진다면, 그럴 때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총기 소지할 수 있는 나라는 피해서 다닐래요.”

2.
“아까 재훈님이 50세를 목표로 돈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어딘가 멋있고, 왠지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비슷한 목표가 있어요. 파이어족 같은. 하지만 저는 역시 바쁘고 힘들고 시달리는 편이 나을 것 같아요.”

고구마 케이크

진수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오랜만에 고구마 케이크나 먹으러 가자면서. 진수는 기억도 가물가물한 학교 때 이야기를 한참 하더니 ‘우리 그때 빵집 자주 갔잖아. 너 맨날 고구마 케이크 먹고 싶다고 노래 부르고 그랬는데. 기억 안 나?’ 하고 물으면서 내 반응을 살피는 것 같았다. 나는 사실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대로 이야기하면 어쩐지 미안할 것 같아서 나 그런 거 안 먹은 지 오래됐어, 하고 답했는데 그러면서 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너무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 때문인지 그 옛날 야간 자율학습의 추억 때문인지, 혹은 김진수라는 흔하디흔한 이름 때문인지 모르겠다. 진수는 그래서 언제가 괜찮겠냐고, 말 나온 김에 약속이나 잡자면서 ‘나 예전의 김진수 아니다. 제법 세련되어졌어.’ 하는데 나는 또 왠지 그의 그런 말이 싫었다. 내가 알던 그는 촌에서 막 올라온 순둥이였는데, 내가 기억하는 김진수는 빵 먹으면 목말라 힘들다면서 늘 나의 식성에 반대하던 아이였는데, 세월이 사람을 바꾸어 놓은 건지 혹은 그에 대한 내 기억이 왜곡된 탓인지, 그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나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전화 덕분에 잊고 있었던 그의 얼굴도 조금씩 떠올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가 왜 갑자기 전화해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왜 하필 고구마 이야기를 했는지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특별히 기억나는 장면이 없어도 누군가 몇 번이고 말해주면, 그리고 설득시켜주면 나는 그들의 기억 속에 남은 모습 그대로의 사람이 되는가도 싶다.

이기적인 거리

나의 이런 심리도 일종의 강박 같아. 누군가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가까워진 것 같다 싶으면 나를 더 알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거든. 언젠가는 반드시 끝내야 하는 숙제 같은 거야. 나를 알려준다는 건 사실 나는 망가진 인간이고, 왜 어떻게 망가졌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는 뜻이야.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상대방이 더는 나와 놀아주지 않을 것 같아서 두려운 마음이 들어. 누군가가 나를 미워하고 떠난다는 건 무서운 일이잖아. 그래서 매번 고민해. 말해야지, 언제 말할까, 말해줘야 하는데, 내가 진짜 어떤 인간인지 이 사람도 알아야 하는데.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마음의 불구가 된 기분으로. 이 고민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적응되지 않아. 여전히 심장이 미친 듯이 뛰거든. 그런데 이 단계를 넘지 못하면 그 사람과의 이야기는 더 확장될 수 없어. 내 진짜 모습은 따로 있는 데다가 가면 놀이는 시간이 지나면 지치기 마련이니까. 그러니 더 친해지고 싶은 사람에게만 하는 이야기인 셈이야.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하나 있어. 상대방이 내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었는지는 별로 고려하지 않는다는 거야. 굉장히 이기적인 자세 아니니. 나는 이런 상황이 늘 무서워. 나를 궁금해하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해주는 것 말이야. 어딘가 이런 말도 있다며. 사람들은 놀랍게도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 관심이 없다고. 맞아.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별 관심이 없어. 대신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궁금하지.

작년쯤부터는 뭔가 말하려다가 만다는 이야기를 가끔 들어. 나는 모르겠지만, 말을 꺼내려다가 말고 이야기도 하다가 말고 그런다는 거야. 사람들과 대화를 하지 않으면서 생긴 버릇인가 싶기도 해. 이런 이야기를 했다가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 고민했을 수도 있어. 혹은 그냥 자신감이 떨어져서였거나. 그러니 방금 뭐였지, 싶은 게 있다면 나에게 물어봐야 해. 나는 막상 말하고 있을 때는 생각을 멈추기 때문에 뭘 말하려고 했는지도 금방 잊거든. 하지만 궁금하지 않은 걸 일부러 물을 필요는 없어. 나도 그게 궁금해서 묻는 건지 예의상 하는 말인지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으니까. 그건 나를 괴롭히는 일이야.